5월 29일, 정부는 「2050 탄소중립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21.5.4시행)에 따라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하였다. 기존의 기후환경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는 녹색성장위원회, 국가기후환경회의, 미세먼지특별위원회를 대체하는 대통령 산하의 위원회이다. 아직은 탄소중립과 관련된 법제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대통령령에 근거한 위원회를 조기 출범시킨 것인데,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고려한 것도 있겠지만, 어제와 오늘 양일에 걸쳐 개최되는 P4G (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Global Goals 2030 녹색성장과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위한 연대) 행사에 맞춰 흥행성을 고려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산업계의 막중한 책임을 고려하였을 때, 탄소중립위원회의 기능과 책임은 현 정권을 넘어 앞으로 더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매머드급의 위원회를 구성하였지만, 기존의 다수 정부 위원회처럼 행정에서 제출되는 계획을 심의하고, 수당만 받는 위원회라면 차라리 밖에서 농성을 하고, 수업거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산업계가 참여하는 위원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의 산업구조를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과감한 실행계획이 제시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소를 지탱하고 있는 기업이나 값싼 전력에 기대고 있는 업계 관계자들을 모신 자리에서 과연 얼마나 과감한 계획이 수립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생긴다. 과학과 기술개발의 올바른 방향, 법과 예산의 효과성을 등에 업을 때야 비로소 <탄소중립위원회>의 역할이 인정받을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교섭권이 없는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한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 내야 한다.
5월 26일, 세계 최대의 석유기업 엑손모빌은 주주총회에서 12명의 이사 중 2명의 이사 자리를 기후위기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엔진넘버원’에 넘겨주었다. 최근 한창 주목을 받는 사회적가치 투자, ESG 의 가시적 현상을 목격한 셈이었다. 같은 날 제2의 석유업체인 로열더치 쉘 역시 역사적 판결 앞에 섰다. 파리협정을 준수하기 위한 탄소중립에 대한 계획이 부족하므로,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목표를 45% 감축하는 것으로 상향조정하라는 헤이그 지방법원의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추후 사법적 대응이 어떻게 더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7개의 단체와 만 여명의 시민들이 소송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기후위기 시대에 의미있는 판례를 남겼다.
과거 MB정부의 <녹색성장위원회>가 녹색분칠한 '신성장위원회'라는 평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명목으로 탄생한 4대강 사업이 녹색성장 예산의 상당부분을 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대응보다는 기술집약적인 토목업계를 먹여살리고,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농을 배양했기 때문이다. 최근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이 등장하면서, 과학기술분야 및 연구분야, 중앙과 지방정부에는 온통 탄소중립 과제들로 예산이 몰리는 중이다. 산림청 마저 탄소중립을 위해 30년 벌기령이 지난 수목을 벌채하고, 30억그루의 어린 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어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린뉴딜을 이야기하면서 온통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보조금, 충전소 설치를 위해 수 조원이 편성되고 있다. 수송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해를 한다 하더라도, 과연 전력화로 초기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회의적이다. 석탄화력발전소 1기를 멈추지 못하고 재생에너지 설비만 증설하고 있다면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녹색성장과 같이 산업계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민주당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 역시 탄소중립 내지는 탈탄소의 방향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초기 탄소배출량 감축성과를 바탕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030년까지 2017년 배출량 대비 24.4%의 온실가스 감축 현안을 상향조정하되, 전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제성장모델에서 벗어나 회복탄력성을 갖춘 행복중심의 지속가능한 사회모델을 만들어가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그런 면에서 <탄소중립위원회>의 구성은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시대전환은 우리 시대의 전환의 가치를 양극화 해소에서 찾고, 경제안보의 한 축으로 기본소득을 내세우며, 새로운 경제지표를 통해 양적 성장에서 질적 개선을 추구할 것이다.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내세우며, 그 실행평가의 좌표를 기후위기 대응과 행복지표에 두고자 한다. 기후위기의 원인을 거대한 시스템의 상호작용과 순환과정의 결과로 이해한다면 에너지 중심의 탄소중립계획만으로는 어떤 경제적 충격도 극복하지 못할 것이고 국민적 수용성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법률제정과 함께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의 격상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가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