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공지능 기반 핀테크 자산관리 스타트업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2018년, 정부가 핀테크 산업을 육성한다 해서, 이 때 정부지원금 받고 시작한 것이 이제까지 못 놓고 있네요.

며칠 전, 같은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를 운영 중인 대표님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두물머리라는 업체인데, 이 업체는 2015년부터 로보어드바이저에 진출한, 국내에선 핀테크 자산관리 선구자에 속하고, 나름 안정화된 업체입니다. 그런데 두물머리의 매출이 안정화될 수 있었던 것은 핀테크이기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비단 두물머리 뿐 아니라, 현재 로보어드바이저라 불리는 “모든” 업체들은 사실 로보어드바이저가 아니라 그냥 전통금융업자 중 하나인 자산운용사에 해당 합니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었던 것이죠.

저희가 처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개발한 프로덕트는 “암호화폐 거래소망을 활용한 진짜 무료 외환송금 시스템”이었습니다. 개발도 잘 해 냈고, 우수로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단서가 달렸습니다. 프로젝트 진행 중에 금융감독원 지침이 변경됐고, 이 서비스가 불법이 됐다는 겁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그 다음에 추진한 프로젝트는 가상자산 로보어드바이저 입니다. 저희가 직접 자금을 수탁 받는 것이 아니고, 바이낸스라는 해외 거래소에 자문하는 형태라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월 1일 서비스를 런칭했는데.. 3월 25일 특금법의 내용이 발표됩니다. 저희가 하는 일이 또 불법이라 합니다. 라이선스를 따려면 약 10~30억원의 자금이 “비용”으로 투입돼야 합니다.

지금 저희는 아예 유럽에서 장사를 할 생각으로 세번째 프로덕트를 개발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싱가폴 소재 PEF 근무 중이신 선배와 줌 미팅을 했습니다. 싱가폴의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금감원은 사업을 영위해도 되는지를 판단할 때, 자칫 어떤 키워드를 잘못 발설하는 순간 시작도 못하게 막는데 비해, 싱가폴의 MAS 사무관들은 왜 이 서비스가 불법인지를 설명해주고, 자기네 법에 맞게 BM을 고쳐주기도 하고, 타 금융사와 연계를 브로킹해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제조업 드리븐 경제 구조를 지닌 우리나라에서 금융 스타트업에 이토록 신경을 써줄 여력이 되는지는 사실 많이 회의적입니다. 만약 핀테크 육성이 어렵다면 적어도 핀테크를 육성하겠다는 소리라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 때문에 헛물 켜고 코딩 배우는 대학생이 너무 많습니다.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지금같은 정책이 모쪼록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비상
암호화폐와 가상자산 부분은 제가 깊이있게 이해고있지는 못하지만, 안철수 대표가 말로만 '새정치'를 팔고 다닌 것처럼,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5년간 말로만 '디지털'을 팔고 다녔다는 생각을 합니다. 4차산업혁명은 1차, 2차, 3차 산업에 또다른 4차산업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1, 2, 3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디지털로 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뜨는 특정산업들(현 정부가 말하는 DNA산업)을 육성하는 것 물론 중요하지만, 이들이 진정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디지털 전환의 토양을 먼저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이슈입니다. 주신 의견에 적극 동의하고, 이런 차원에서 핀테크와 스타트업 관련 제도 뿐 아니라, 정부의 구조 자체를 디지털 전환에 옵티마이즈 시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혹시 구체적인 좋은 정책이 있으시면 정책경연의 장에 좀 더 구체화 시켜서 올려주시면 3분기 정책경연의 장에서 함께 논의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물개작두
@비상 리서치할 명분이 생긴다면, 저도 싱가폴 제도 등을 좀 더 파 보겠습니다. 어차피 회사 일로 공부를 해야 했던 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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