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법조기자의 글입니다.
사실 정치인, 언론인이 칭송받는 나라 참 드물다. 어디나 옐로 저널리즘이 판치기는 매한가지고 방향성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언론인들의 고민은 엇비슷하다.
언론은 어느 정도 '책임'보다는 '자유'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야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언론 특유의 방종이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그럼에도 언론 자유가 여러 선진국에서 여전히 중시되는 것은 언론매체 각각이 그럴 광범위한 자유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언론의 기능 자체가 중요하기 떄문이다. 사회 이상신호를 감지해 경고음을 내주는 시그널로서의 역할 말이다.
언론은 신체현상으로 따지면 '통증'에 해당한다. 성인군자라 하더라도 변태가 아닌 이상 고통을 사랑할리 없다. 하지만 통증은 우리 신체에 이상이 있다는 중요한 신호다. 암이 무서운 것은 통증이 극심해서가 아니라 치료의 골든타임에 정작 통증이 없어서다. 큰 외상사고가 일어났을때 의사들은 환자가 통증을 느끼는지부터 체크한다. 아픔을 느끼면 정상이다. 아니면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이 법은 통증이 무섭다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신경을 죽이겠다는 법이다. 물론 이 기사 밑에도 똑바로 검증해서 거짓없이 기사를 쓰면 아무 문제 없다는 정의로우신 분들의 비아냥이 가득하다. 이 법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도 정당한 보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법원을 들락거려야 하는지 아는 나로써는 선뜻 그 낙관론에 동의하기 어렵다. 거기다 이 법이 통과되면 내 기사가 악의적이지도 고의적이지도 않았다는 점을 기자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소송 걸 사람은 참으로 편리하고 피소당하는 사람은 황당해지는 대목이다. 재벌이나 정치인 공직자는 이 법의 대상이 아니라 하지만 재벌 조지는 기사라고 기사에 재벌만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앞세워 소송 걸기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변호사 비용이야 백번 양보해 회사가 대준다 해도...(자기가 비용 대기로 하면 답이 안나온다)수천에서 수억에 달하는 송사에 걸려서 그것도 자신의 무죄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다른 일이 손에 잡힐리 없다. 소송 한두개 걸리면 이 기자는 사실상 취재활동을 접어야 할 것이다. 민사 소송 특성상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유무죄 판단까지 지켜볼 필요도 없다. 꼴보기 싫은 기자 하나 묻어버리기는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운 시대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