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가지 사안은 오래전부터 명백히 "명분상" 듣기 좋은 말일 뿐 실제로 시장에서는 정 반대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저한테 딱 확신을 주는 경험을 하게 되어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저희 회사에 디자이너 포지션이 오픈되었는데, 저희가 하는 일들이 그렇게까지 고퀄의 '아트'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에 이왕이면 재주있는 주니어를 채용해서 잘 키워가면서 일을 해볼자라고 직원들과 합의가 되어서 디자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고졸사원 A를 디자이너로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학력에 따른 급여차이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졸 직원들도 기꺼이 받아드리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직원과 회사가 서로 합이 맞는지를 테스트 해 봐야 하기 때문에 조건 차이 없는 6개월 계약직으로 채용했고, 6개월의 근무가 문제없이 만료가 되면 정직원으로 자동전환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한달 쯤 지나자 선배 디자이너가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A의 퍼포먼스가 많이 부족해서 매번 A가 하고난 작업을 본인이 다시 재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왕 한팀이 되었으니 잘 가르쳐서 키워간다고 생각하고 힘써주세요"라고 하고 넘어갔어요. 하지만 그 뒤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객사이드에서, 내부에서 경고음이 들려왔습니다.
A가 참 착하고, 열심이고, 긍정적이어서 가급적이면 잘 가르쳐가면서 원팀을 만들고 싶었지만, 3개월만에 근로계약을 사전종료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제 생각에 A는 그림은 잘 그리는데, 업무지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폰트 종류나 크기가 언밸런싱하거나, 글과 그림의 위치 배치가 어색하거나, 전형적인 '경험부족'형이라 잘 가르치면 될 것도 같았는데 두가지가 A에 대한 빠른 손절을 하도록 저를 압박했습니다.
하나는 이 비싼 급여를 주면서 1~2년 더 가르치기에는 너무 부담이 된다.
다른 하나는 계약직 기간이 만료되고 정직원이 되고 나면 그때 가서 후회하면 너무 늦다.
10년 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중국현지 포함해서 제가 직접 나가라고 한 경우는 A가 두번째였습니다. 첫번째는 중국 직원이었는데, 낮은 퍼포먼스와 직원들의 원성에도 3년을 기다려주다가 결국 나아지지 않아서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중국의 고용시장은 정규직 계약직 없이 모두가 계약직이라 해고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간단하긴 합니다.)
이처럼 제가 가급적 한배를 탄 식구들은 부족하더라도 같이 끝까지 가고 싶어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 이런 상황을 겪고 나니 다시 한번 시장논리를 무시하고, "명분만 좋은" 제도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약자"들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오게 되는지 곱씹게 됩니다.
A에게 해고 소식을 알리는 것도 너무 미안했지만, 현실적 문제 때문에 제가 원치 않는 방향의 의사결정을 하게 만드는 제도가 너무 원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정책을 내고, 입법 활동을 할 때 꼭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저도 비정규직에 대한 공감과 마음아픔이 있지만 전면 정규직화는 분명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비정규직이냐 정규직이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비정규직이라도 사회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조금은 더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비정규직이나,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확충되지 않은 채로 기업에게 정규직만을 강요하는 것은, 사실상 시민들의 경제생활과 안정, 복지를 기업이 전적으로 책임과 부담을 가지도록 전가시켜버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으로 받아들여 끝까지 책임지는데는 분명 상당한 부담과 우려,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고, 정규직으로 받아들인다면 사실상 그 사람의 삶을 책임지는 것과 같게 되는데, 정부가 그런 부담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일정 부분은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임에도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분명 A님도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고, 다른 곳에서 더 성장하실테니 마음의 부담은 내려놓고 계속 화이팅하시길 응원드립니다 :)